필자는 얼마 전 교사직을 그만두고 목사를 하고 있는 동창을 만났다. 그 친구로부터 우연히

자신의 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을 듣게 됐다.

당시 수학 선생님은 기말고사 시험문제 유출로 경찰조사를 받았으며 이로 인해 불명예 퇴직

을 했다는 것이다.

시험지 유출은 양자간의 문제가 아니라 부도덕하고 위법한 도둑질로서 사회에 커다란 해악을

끼치는 행위이다. 모든 인간사회에서는 스승이 답안지를 빼돌리는 일, 면접시험에서 면접관이

면접자의 성적을 조작하는 일 모두 사회의 악이다.

얼마 전 숙명여고 쌍둥이 성적유출 의혹사건이 경찰에 의해 확인되면서 아버지인 교무부장인

A씨를 불구속 입건한 데 이어 두딸 및 전임 교장과 정기고사 담당교사 등 6명을 조사중에 있

다. 사건은 1학년 1학기 성적이 각각 전교 59등, 121등이었던 자매가 2학년 1학기 기말고사

에서 각각 문·이과 1등을 하자 다른 학부모들이 부정 의혹을 제기해 수사로 이어졌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 일각에 왜곡된 가족 이기주의의 민낯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씁쓸하다.

참스승으로서 학생들에게 정직과 성실을 강조하고 가르쳐야 할 교사가 좋은 입시결과를 내보

겠다는 공통점이 있다. 숙명여고와는 경우가 사뭇 다르지만 두 사건 모두 학교생활기록부라는

내신 때문에 발생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대입 전형에서 내신 비중이 높아지면서 내신 경

쟁의 불투명성과 불공정성도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학부모들은 유사한 상황(부모가 자녀와 한 학교에 재직하는 경우)에 대해 전반적인 조사를 요구하는 등 파장이 만만치 않다. 특히 현장 교사에 의한 시험문제 유출은 기왕의 학생부 위주 전형에 대한 불신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숙명여고 사건에 대한 댓글은 시험문제유출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 보다 현행 대입제도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다. 짧건 길건 댓글 대부분은 학종 폐지와 수능 중심의 정시확대 주장으로 수렴되고 있다.

특히 수시전형에서는 각 대학들이 학생부 위주 전형은 전반적으로 확대추세다. 교육부는 2022학년 대입제도 개편을 마무리하면서 정시비중을 30%이상 권고했으나, 대학들은 논술, 특기자 전형들을 축소 조정하고 학생부 위주 전형 특히 학종은 유지 또는 확대하고 있다.

2018학년 대입에서 서울 소재 15개 대학의 학생부위주전형은 전체 모집인원의 52.8%에 달했다. 학종 본산이라는 서울대는 전체 모집인원의 78.5%를 학종으로만 선발하고 있고, 고려대는 80% 넘는 신입생을 학생부위주전형으로 선발한다. 학생부위주전형은 대학일수록 비중이 높다. 2022학년 대입제도 논란이 일단락되면서 진보교육진영은 학종의 문제에 대해 본격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했다.

학종 확대로 학교현장 교육이 정상화되고 있으나 불공정성, 불투명성, 경제력 의존성 등의 문제가 여전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해법을 찾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새 해법 찾기가 학종의 근본적인 문제를 논하지 않고, 현행 기재사항에 대한 축소, 폐지에 논의가 머문다면 큰 의미가 없다.

필자는 두달 전 특목고에 재직하고 있는 현장 교사 두 사람과 현 대입제도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중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최상위권 성적의 학생들일수록 교사에 의해 내신조작이 가능하다는 얘기였다.

숙명여고를 비롯한 적지 않은 학교의 문제유출 의혹이 다양한 형태로 실재하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번 사건의 진실이 밝혀질 경우 해당 학교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이 입을 상처가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

무너진 교육정책에 대한 신뢰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도 걱정스럽다. 부모와 자녀가 한 학교에 다닐 수 없도록 법제화하여 이런 사태를 원천봉쇄하고 학교는 시험지 관리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문제유출은 결국 불신을 조장하고 자신은 물론 자녀까지도 망치는 지름길이다. 이번 숙명여고 사건을 계기로 맹목적인 자식 사랑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되돌아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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