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곡, 오페라 창작도 작곡가와 인연을 따라 꽃을 피운다

눈만 뜨면 인연인 세상

세상에 태어난 모든 것은 ‘因緣(인연)’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은 눈만 뜨면 인연인 세상이 되었다. 내 손안에서 ‘인연’이 발생하고 내 손안에서 ‘인연’이 떠날 수 있는 스마트

탁계석 비평가협회 회장
탁계석 비평가협회 회장

폰 시대. 페이스북엔 하루에도 수 십 명씩, 그것도 지구촌 어디에서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친구의 인연을 요청한다. 나는 친구의 인연을 선택한다. 그리고 대수롭지 않다고 여기는 인연은 승낙하지 않음으로써 인연을 버린다.

트윗의 인연도 그렇다. 마치 번식기의 메뚜기 떼처럼 초단위의 물살을 가르며 인연을 맺으려 한다.

인연이 많은 것이 힘이 되고, 세력이 된다. 정치인들이나 연예인, 유명 작가들까지 가세해 인연 사업(?)을 하고 있다. 그러니 좋은 인연, 나쁜 인연을 가리지 않고 가꾸면 돈이 되는 세상이니까 이 엄청난 인연의 홍수 속에서 인연의 운명도 시시각각 변한다.

선택되는 인연, 버리는 인연, 가꾸는 인연 속에서 福(복)과 禍(화)의 갈림길이 존재한다.

많은 인연이 시간과 정력을 낭비할 수 있고 가꾸지 않은 인연은 쓸모가 없을 것이기에 인연에 대한 새로운 분별력과 해석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고전에 나타난 참 인연의 매력

얼마 전 ‘送人(송인)’이란 고려가요를 개사해 작품(김은혜)을 하나 만들었는데 성악가들로부터 반응이 좋아 이 곡을 좀 키워보려는 마음이다. 봄비 내려 개인 언덕에 / 풀잎은 푸르러 그토록 푸르러/ 그대를 보낸 이 마음에 슬픈 노래만 남았네/ 중략. 님이여, 님이시여/ 저 강물 마르면 오시리이까/ 흐르는 눈물 다 마르면 오시리이까/.

사람을 보내고 이토록 애태워 할 수 있는 감정을 요즈음 정서로는 좀 상상하기가 힘들지 모른다. 이 시에 나타난 세월의 시간, 공간의 거리, 정보의 부재가 님을 보내고 애간장을 녹이지 않는가. 오늘에 우리는 더 많은 이별과 결별의 상처를 안고 산다. 때문에 오고 가는 것이, 인연을 맺고 끊음이 잠정을 유발하지 않는 무감각한 세상이 되어 간다. 한 사람이 죽으면 신문에 큰 활자의 뉴스가 되던 시절에서 일년에 수백명이 자살했다는 통계에도 꿈쩍않는

무감각의 감성을 살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송인’처럼 까마득하게 보이지 않는 옛날 정서를 요즈음 아이들이 바로 느끼기 힘들겠지만 그렇다고 또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닐 것이다. 이 곡이 소통되고 감성을 자극하는 것을 보면 그것은 분명 사람들 마음속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무리 바깥세상이 변한다 하여도 인간 DNA 정서에 자리하고 있는 원초적 감정은 남아 있는 것 같다. 정말 인생을 살면서 이토록 간절한 인연을 맺고 인연의 꽃을 피울 수 있는 없을까.

창작도 작곡가와의 인연을 따라 꽃을 피운다

필자는 평론가로서 30년 넘게 현장을 지키고 있지만 10 년 전 쯤부터 창작과 인연을 맺었다. 돌이켜 보면 이 인연이 좀 더 일찍 맺어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것은 한국 음악사를 빛낸 훌륭한 작곡가들과 인연이 되었더라면 어쩌면 명작을 남길 수 있었을지 않을까 하는 기대때문이다.

소설이나 시는 혼자서 쓰지만 오페라는 대본가와 절묘한 호흡의 인연이 있어야 한다. 김소월의 詩가 수많은 작곡가들에게 영감을 주어 곡이 탄생하지만 그렇다고 모두 애창되는 것은 아니다. 인연이 되어 열매를 맺었지만 활짝 꽃을 피운 것은 아니다. 그러고 보면 인연은 계속 가꾸어지고 성장 발전하는 속에서 인연의 참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가히 작품의 인연 중 최고는 작곡가 베르디와 대본가 피아베다. 이 찰떡 궁합의 인연에 의해 리골레토, 라 트라비아타, 멕베드, 운명의 힘 등 모두 10개의 명작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인연의 세계화, 글로벌 시장의 개척

필자도 좀 늦었지만 창작자로서의 인연을 꽃피우기 위해 창조적 영감의 작곡가들과 만남의 인연에 감사하며 명작으로 남기 위한 또 하나의 인연 즉 관객과의 소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끼리만의 인연이 아닌 세계 사람들과 만나는 인연을 맺기위해 인연을 가꾸어 가야 하겠다.

나의 대본과 인연을 맺은 황순원 원작의 ‘소나기’(최천희),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우종억) 한강 칸타타(임준희) 비바 아리랑(이철우) 등의 작품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앙코르로 환호하는 인연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페이스북과 트윗이 새로운 인연을 맺어주는 글로벌 무료 중매쟁이가 아닌가. 참 좋은 인연의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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