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시절의 추억 … 대전의 시대별 변천사
그때 그시절의 추억 … 대전의 시대별 변천사
  • 최정섭 기자
  • 승인 2019.11.21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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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의 중심은 1990년대를 기점으로 선화동과 은행동을 기점으로 충남도청 및 관공서들이 둔산동으로 옮겨가면서 둔산동이 새로운 명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대전 사람들은 원도심인 은행동 일대를 여전히 시내라고 부른다. 시내는 도시의 역사가 숨 쉬고 있고, 삶의 추억이 깃들어 있다.

붉은 타일 길은 대전시가 최근 조성한 원도심 근대문화 탐방로. 이 길은 대전역에서 출발해 중앙로를 거쳐 옛 충남도청, 옛 관사촌, 옛 대전여중 강당, 대전역으로 돌아오는 5.17구간에 걸쳐 있다. 대전의 주요 근대문화유산은 대전역이 들어선 뒤인 1930년대에 지어졌다.

이에 원데일리는 30년대, 40년대, 60년대 사진을 통해 대전의 변천사를 알아봤다.

30년대 대전장의 모습
30년대 대전장의 모습

생활모습이 살아 숨쉬는 30년대의 대전장

대전의 장은 1917년 대전면이 선정되면서 초하루와 엿샛날을 장날로 정했다. 지금의 인동시장 부근엔 유성, 옥천장의 보부상을 비롯해 대덕군 주민 등이 50~100리에서 장을 보러왔다고 한다.

장날은 엣 어른들의 또 다른 명절이었으며 해방전까지 지금의 원동시장엔 유일한 공설시장이 있기도 했다.

40년대 대전 번화가의 모습
40년대 대전 번화가의 모습

40년대의 대전번화가

대전에 근대식 번화가가 생기기 시작한 때는 경부선 철도를 가설하면서 부터다. 1905년 대전역이 세워지면서 대전역을 중심으로 인동·원동·중동·정동 일대에 상가가 조성되기 사작하여 점차 은행동, 선화동 방면으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1927년 말의 대전인구가 16천442명 뿐이었으나 당시의 상가는 이들을 상대로 한 규모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27년 말의 대전 인구가 16천442명 뿐이었으나 당시의 상가는 이들을 상대로 한 규모에 지나지 않았다.

60년대 대흥교 인근 도로정비공사 현장
60년대 대흥교 인근 도로정비공사 현장

60년대 대흥교 건너편

대흥교 건너편의 도로정비공사 현장모습

60년대 목척교 옆 대전천의 모습
60년대 대전천에서 겨울스포츠를 즐기던 모습

겨울스포츠를 즐기던 60년대 목척교 옆 대전천

1912년 폭 3칸, 길이 38칸 5푼의 규모로 개설된 목척교 아래는 겨울이면 거울같은 얼음판을 만들어 주는 대전천이 있었다.

60년대 대전천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다.
60년대 대전천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다.

대전천은 만인산과 산내 장척동에서 발원해 대전시내 중심가를 관류하는 하천이다. 유폭이 좁고 물살이 세지 않아 여름이면 동네 고기잡이로 성사를 이루던 곳이다.

구즉교 나무다리는 지금의 송강시알들과 목상동의 신대들을 잇는 갑천 신구교 다리다.

이 나무다리를 건너며 장도 보고 등교도 하던 유용한 다리였다.

60년대 사람들이 구즉교 나무다리를 건너는 모습
60년대 사람들이 구즉교 나무다리를 건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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