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러 절에 간 한석봉이 3년 후 더이상 공부할 것이 없자,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어머니는 반가워하는 대신 그의 글을 시험해 보았다. 불을 끈 상태로 한석봉은 글씨를 쓰고 어머니는 떡을 썰었다. 어머니가 썬 떡은 고르게 썰어졌으나 한석봉이 쓴 글씨는 삐뚤삐뚤거렸다. 이에 어머니께서는 아들의 자만심을 고쳐주기 위해 그를 다시 공부하도록 내보냈다고 한다.”

이것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석봉과 그의 어머니에 대한 일화입니다. 학습의 꾸준함과 성실함을 말할 때 자주 등장하지요. 그렇다면 석봉 어머니의 떡썰기는 학습의 꾸준함과 성실함만을 가르쳤을까요? 아마도 학습환경과 자세에 대해서도 말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필자는 예비 수험생을 둔 한 부모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봤습니다. 자칫 예민한 학생을 둔 학부모였다면 공부에 방해되니 아예 시끄러운 일은 만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공부만 해. 나머지는 엄마가 해줄게’ 입시를 눈앞에 둔 학생이라면 공부가 1순위이고 인성과 생활은 2순위라는 생각에서 공부에 방해가 되는 일이라면 무엇도 하지 않는 학부모가 있습니다.

“설 연휴에 보강시간 잡았어요. 이제 저도 입시생 부모네요. 이번 겨울방학이 중요한데 설 연휴에 우리 애 흐트러질까 걱정이예요.”

그래서 입시생은 가족모임에도 열외가 되고, 집안일에서도 특혜를 받곤 합니다.

“시험기간에는 주로 배달음식을 시켜 먹어요. 아이들 공부하는데 저도 옆에서 이것저것 챙겨주려면 시간이 모자라요. 무엇보다도 애들 공부하는데 음식하고 차리고 설거지하다 보면 좀 시끄러워져서요. 우리 아이가 시험 기간에는 좀 예민해지거든요.”

시험기간에는 아파트에 배달오토바이만 다닌다는 말이 농담만은 아닌듯 합니다. 

“공부할 때는 텔레비전도 안봐요. 신랑은 공부가 무슨 벼슬이냐고 불평하지만 그래도 텔레비전 소리에 아이가 집중을 못하니 어쩔 수 없죠.”

며칠 전 학원에서 아이를 기다리다 모처럼 몇몇 엄마들과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어요.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도 잠시 입시와 아이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죠. 물론 저도 나눈 이야기에 많은 공감을 했어요.

내 아이가 ‘공부중’ 이라면 그것에 방해가 되는 것은 모두 없애고, 가족 모두가 아이의 공부가 끝날 때가지 침묵하고 있을 때가 있거든요.

저도 아이가 공부하고 있다면 도마질이나 설거지를 할 때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하려 합니다. 그런데 아이는 그게 습관이 되었는지 조금 시끄러우면 짜증을 내기도 하더군요.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아이가 예민해서, 공부하니까...

언제부터인가 이 말들이 학생들에게는 무기가 되었고, 학부모님은 그것에 발목을 잡혔습니다.

공부만 하면 모든 것이 용인되는 학생들에게, 공부 때문에 과하게 예민해진 학생들에게, 주변이 시끄럽거나 조금만 거슬리는 상황이 되어도 자신의 컨디션이 좌우되곤 합니다. 그것은 결국 시험에도 영향을 주지요.

“아는 친구 아이가 공부를 참 잘해요. 영어듣기에서 하나 틀렸어요. 시험 도중에 친구가 교실 바닥에 연필을 떨어뜨려서 잘 못들었대요. 얼마나 억울해요.”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한 어머니는 그 학생의 상황을 안타까워했습니다. 저는 그 학생이 실력이 아니라, 평소 예민하게 공부하던 습관 때문에 실제 시험환경에서 예상못한 상황에 본인의 페이스를 놓친 상황이 더욱 안타까웠습니다.

공부는 학생의 의지와 주변 환경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배려하지 않고 자신만의 학습환경에서 공부한 아이들에게는 시험환경도 그렇게 만들어져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아주 사소한 것에도 방해가 된다고 하거나 예민해지는 것은 바른 학습 태도가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아이가 공부중! 이라 하더라도 엄마는 집안일을 하고 아버지와 동생들은 좀 돌아다녀도 됩니다. 그렇게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집중력을 기를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설을 앞두고 방앗간은 가래떡을 뽑는 사람들로 붐빕니다. 방앗간에 가서 가래떡 몇 줄을 사서 떡썰기를 시도해 보려고 합니다. 그것이 소음이라고 짜증내지 않기를 바라며 말이죠. 오히려 백색소음으로 학습효과가 오를지도 모르겠네요.

석봉의 어머니는 석봉이 공부하는데 단호하고 엄격한 분이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석봉에게 공부는 성실하게 하는 것이고, 공부에 대한 자만심이 들지 않도록 주의를 주었지요.

그래서 석봉의 어머니는 환경을 핑계 삼아 예민해지지 않도록, 성실히 자신의 일을 할 수 있도록 알려주기 위해서 덕을 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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