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는 말은 철 지난 지 오래다. 정권이 바뀌면 으레 교육 정책이 뒤집힌다. 한 정권 내에서도 입시 방식이 이랬다저랬다 요동친다. 100년은커녕 5년 앞도 내다보기 힘들다. 자고 나면 달라지는 대입 정책 혼선에 학생과 학부모는 갈팡질팡 허우적댄다.

대학입시제도는 변천에 변천을 거듭해 왔다. ‘대학별 단독시험제→대입예비고사·본고사→대입학력고사→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바뀌었다. 저마다 변경요인이 있었지만 부정입학 문제가 만연했고, 예비고사.본고사로 사교육 열풍을 양산했다.

수능 역시 여러 문제를 낳으면서 제도 보완이 이뤄지고 있는 상태다.

지난 15일에 치러진 2019수능시험에서 ‘불수능’으로 불리면서 수험생들의 대입전략에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수능 이의신청건이 무려 1000건의 이의신청이 들어왔다. 사회탐구 영역이 500여 건으로 가장 많았고, 국어와 수학에 각각 100여 건이 다음 순이었다. 고난도 문항에 대한 항의 글도 쏟아졌다. 특히 국어 31번 문항에 대한 불만이 쇄도했다. 특히 과학탐구 지문은 읽고 이해하는 데 거의 10분가량 걸리면서 수험생들이 첫 시간부터 당황했을 것이다. 과학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문과 학생들은 더 어려웠다는 원성도 많았다.

교육부는 매년 교과서와 EBS 내에서 70~80선을 유지하는 정책을 밝혔다. 하지만 변별력은 상실한지 오래다. 변별력의 상실은 성실히 공부하는 학생들을 피해자로 만들고 있는 모순을 낳고 있다. 이번 수능처럼 실수로 한 문제를 틀리면 2등급이 되는 시험은 분명 잘못됐다. 실력이 아닌 그날의 몸 상태와 운에 좌우될 가능성이 높은 탓이다. 실수가 점수를 좌우하는 시험은 어김없이 다음 학년도 재수와 반수를 양산한다는 점도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물수능이 당국의 기대처럼 사교육을 잡기는커녕, 사교육이 수능시장에서 논술과 비교과 활동 분야로 팽창하는 풍선효과만 초래했을 뿐이다.

어느 해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게 수능이다. 냉온탕을 넘나들다 보니 문제점도 많았다. ‘불수능’보다는 ‘물수능’의 부작용이 더 컸다. 수학, 영어 과목의 만점자가 속출했고, 한 문제 차이로 등급이 달라지는 바람에 수시모집에서 수능 최저학력 기준을 맞추지 못하는 낭패도 겪었다. 초·중·고 12년 학업 결산이 실수 한 번으로 끝장나기도 했다.

실력이 아니라 실수로 떨어지는 걸 받아들일 수 없는 학생들은 재수를 택하게 된다. 재수생의 58%가 그렇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잘못된 오류를 신속히 인정하지 않는 당국의 무책임한 태도도 수능의 신뢰를 갉아먹는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올해의 경우 지난해 미숙했던 대응을 반면교사 삼아 신속하게 오류를 인정하고 복수정답을 인정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지난해의 경우 수능당국은 세계지리 문제에 타당한 이의제기가 있었음에도 스스로 귀를 닫고 채점을 강행했다. 결국 수험생들을 상대로 한 1년여의 소송 끝에 법원에 의해 수능 결과가 뒤집히는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수능당국의 권위를 지키려다 일말의 신뢰마저 무너뜨린 꼴이되고 말았다.

정부가 지난 4일 발족한 대학수학능력시험 개선위원회는 흔들리는 수능의 원칙을 굳건하게 바로잡는 일부터 해야 한다.

먼저 확실하고 폭넓은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해 수능에 따른 반발여론에 기대어 임시방편으로 정치적 개선책을 내놓아서는 영영 수능 혼란을 바로잡을 수 없게 된다. 벌써부터 수능을 없애버리자는 주장이 터져나오고 있다. 혼란에 대비한 단계적인 대책 없이 수능부터 없애 버리는 것은 더 큰 혼란을 부르는 꼴에 불과하다.

치열한 입시경쟁 속에서 발생한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런저런 왜곡을 겪다 보니 교육

과 입시제도는 걷잡을 수 없이 비틀린 모습으로 변해 가고 있다. '목욕물을 버리려다 아이까

지 버린다'는 말이 있다. 부수적인 일에 매달리다가 본질을 잃는 어리석음을 일컷는 말이다.

이제 당국은 중지를 모아야 할 때다. 자고나면 바뀌는 교육정책에 변별력 없는 교육정책 우리

모두 지혜를 모아 ‘백년지대계’의 근간을 올바로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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