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성 대전주님의교회 담임목사.
박기성 대전주님의교회 담임목사.

얼마 전에 인터넷을 통해 두 권의 책을 구입했습니다. 일반 서점에서는 품절된 책들입니다. 꼭 읽고 싶었던 책들이었기에 인터넷을 통해 중고책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책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특정 쇼핑몰에 가입을 해야 했습니다. 

마침 아들이 그 쇼핑몰에 회원으로 가입이 되어 있어서 구입을 부탁했습니다. 두 권의 책값은 25,820원입니다. 그래서 인터넷 뱅킹으로 아들의 계좌에 3만원을 입금시켜 주었습니다. 

밖에 있다가 집에 들어온 아들이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아들에 대한 아빠 사랑은 4,180원짜리예요.” 책값 외에 겨우 4,180원만 더 입금된 것에 대해 ‘쩨쩨하다’는 투로 말을 던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바로 반박했습니다. “야! 25,820원만 입금해도 되는데 3만원을 입금해 주었으니 나한테 고마워해야 되는 것 아니냐? 넌 4,180원을 남겼잖아!” 

웃자고 던진 말 인줄 알기에 모처럼 가족 모두가 한바탕 웃기는 했지만 얼떨결에 나는 돈을 더 주고도 쩨쩨한 아버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도 종종 하나님을 쩨쩨한 아버지로 만들 때가 있습니다. 기도의 응답과 바람이 원하는 것에 미치지 못할 때에 우리는 종종 “내가 그 동안 얼마나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는데...”, “내가 얼마나 많은 헌신을 했는데...”, “내가 얼마나 많이 헌금을 했는데...”라며 실망감을 드러냅니다.

이러한 불평을 다시 곱씹어 보면 우리의 태도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동안 해왔던 우리의 열심과 헌신을 ‘투자’로 전락시킨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만큼 투자를 했으니 하나님은 거기에 대한 합당한 보상과 이윤을 투자자인 나에게 배당해 주어야 합니다.”라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는 ‘조건적 계약의 관계’이지 결코 ‘사랑의 관계’는 아닙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사랑의 관계’입니다. 그 사랑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독생자까지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요 3:16). 성육신하여 오신 하나님 곧 예수님도 그 사랑 때문에 ‘친구’ 삼은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습니다(요 15:13). 

그 덕에 우리는 영생을 약속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만나를 ‘하찮은 음식’(민 21:5)이라며 투덜거린 이스라엘 자손처럼 감사는커녕 투정을 부립니다. 

굳이 따지고 보면, 우리는 ‘남는 장사’를 했습니다. 우리의 약간의 것을, 그것도 하나님께는 아무 쓸데없는 이 땅의 것들을 드리고도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결코 쩨쩨한 아버지가 아닙니다. 또한 그 분의 사랑도 ‘4,180원짜리’같은 이 땅의 가치로 평가될 수 없습니다. 그 분은 그냥 ‘사랑’이십니다(요일 4:8). /대전주님의교회 박기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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