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태 전 MBC앵커
김헌태 전 MBC앵커

12월이다. 한해를 마감하는 달이 왔다. 12월에 가장 많이 쓰는 단어는 바로 다사다난이다. 나라 안팎으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다사다난했던 2023년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한 해였던 것 같다.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등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한해를 달려왔다. 정치적으로는 갈등과 대립의 연속이었다.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내홍의 연속이었다. 과거처럼 중량감 넘치는 정치지도자들이 부재한 상태에서 군웅할거시대를 맞았던 한해였다. 국회는 거대 야당의 독주 속에 여당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끌려다니는 형국이었다. 정권을 쥐고 있지만 국회 의석수에서 밀리니 맥을 추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듯싶다. 이래서 내년 총선에 무언가를 기대하고 혁신이니 뭐니 해서 변화를 모색하지만 모든 것은 녹록지는 않다. 특히 재판장에는 정치인 재판이 끊이질 않고 있고 검찰에는 불법 비리 정치인을 향한 수사의 칼날이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운 한해였다. 그 말이 많았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도 유관 정치인들이 1심에서 3년이란 실형을 선고받았다. 무려 3년이 넘게 걸린 재판 결과물이다. 아직도 많은 사건이 수사선상에 있거나 재판 중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가에서는 신당 출현이 회자하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공천받지 못하거나 배제당한 정치인들이 출구가 바로 신당이 될 듯싶다. 바로 12월이 신당이 출현한 것인지 그 실체가 드러나는 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이합집산이다. 내년 4월 10일이 총선이니까 주도권을 가진 지도부들은 나름대로 세 규합에 나서고 있다. 공천에서 배제당할 것 같은 인물들은 바늘방석에 앉아있다. 하지만 정중동이다. 12월에는 정치권이 요동치는 상황을 맞을 듯싶다. 공천과 관련하여 불이익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세력들이 신당이란 출구로 몰려들 것은 뻔하다. 정치의 비정함을 느끼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12월이다. 예비후보 등록일이 12일이니까 내년 총선을 향하는 인물들의 윤곽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물론 경선이라는 이름으로 공천 결과물을 내놓는다고는 하지만 이것도 허점은 숨어있다.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도 버젓이 공천되고 있기 때문이다. 불법 탈법 비리 부정부패의 인물은 당연히 배제되어야 하는데도 기실 그렇지 못한 것이 정치판이다. 지금 같은 정치권의 모습이라고 한다면 정치 지형은 일대 변화가 예상된다. 다만 정치 불신과 혐오감을 어떻게 극복하며 정치발전을 도모하느냐 하는 과제가 남는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1대 국회의 의원들은 이제 자기 지역구에 가서 지지 세력을 확충하느라 자리를 넘보는 신인들을 견제하느라 바쁠 것은 뻔하다. 벌써 새로운 도전자들의 출판기념회가 성시를 이루고 있는 데서도 엿볼 수 있다. 올 12월은 선거전이 막을 올리며 공천 경쟁이 뜨겁게 달아오를 것은 분명하다. 신당의 모습도 보일 것이다.

올해는 황당한 사건도 많았다. 이른바 묻지 마 살인 사건이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연쇄적으로 일어나 무고한 시민들이 피해를 봤다. 7월 21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일대에서 대낮에 흉기를 휘둘러 20대 남성 1명을 살해하고 30대 남성 3명에게 상해를 입힌 사건이다. 행인을 살해한 조선(33세)은 검사 결과 사이코패스였다. 8월 3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에서 흉기 난동을 부려 무려 14명의 피해자를 낳은 최원종(22세)도 조현성 성격장애를 진단받은 병력이 있다. 정신적인 문제라고는 하지만 그동안 발생한 살인 사건을 보면 황당하기만 하다. 부산 20대 또래 여성을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한 정유정(23세)은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해마다 끊이질 않고 있는 묻지 마 살인 사건은 우리 사회가 병들고 있다는 사실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데다 살인 예고 글까지 버젓이 인터넷에 장식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치매를 제외하고 정신질환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은 사람은 332만2,176명으로 2022년 332만2,176명보다 27.3%가 증가했다. 이는 지난해 말 기준 인구 1,000명당 64.6명, 100명당 6명꼴이다. 물론 코로나19 펜데믹 이후 급격한 사회 변화 탓도 있지만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진 데서도 그 요인을 찾을 수 있다. 우울증, 불안 장애 등 각종 정신질환은 우리 사회 병리 현상을 말하고 있다. 한해가 던져주었던 우리 사회의 암울한 단면이다.

올해 특히 서민들을 울리는 사건이 많았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전세 사기다. 인천 미추홀구 전세 사기는 무려 2,479가구나 피해를 봤다. 고통과 좌절에 빠져 극단적인 선택까지 이어졌다. 수원 전세 사기, 대구, 부산, 대전에 이르기까지 전세 사기 사건이 끊이질 않고 있다. 전세사기특별법이 만들어졌는데도 여전하다. 정부의 '전세 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 특별법' 시행에도 대전지역의 경우에는 전세 사기 피해가 점점 커지고 있다. 대전 전세 사기 피해자 대책위원회는 지난 10월 23일 긴급 간담회를 갖고 대전의 피해 가구는 최소 2,563가구, 피해 건물은 229채, 피해액은 2,500억이 넘는다고 밝혔다. 여기다 현재 진행 중인 3,000억 원대 전세 사기 사건까지 포함하면 피해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고 한다. 다세대주택 중심의 특별법이 다가구주택에는 허점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피해자들은 주장한다. 전국에는 전세 계약 기간이 도래하지 않아 드러나지 않은 잠재적인 예비 피해자들도 상당수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른바 깡통전세 지역이 전국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법의 사각지대에서 있는 전세 사기 피해자들의 고통과 눈물을 닦아줄 특단의 대책이 요구된다. 이런 고통이 이어진 12월을 보내고 있다.

저출산고령화도 이제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는 극한 상황에 처해 있다. 말로만 대책이 있을 뿐 구체적인 성과는 없다. 2023년 2월 기준 전국 228개 시군구에서 소멸위험 지역은 118곳(52%)이었고, 이 중에서 소멸고위험 지역은 51곳(22%)이다. 지역별 통계를 보면 전북, 강원, 경북, 전남, 충남 지역은 소멸위험 지역의 비중이 80%를 넘어섰고, 충북과 경남 지역도 70%를 넘겼다. 비수도권 광역도 대부분이 소멸위험에 직면했다. 소멸지역 자치단체가 인구 유인책을 쓰고 있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충북 괴산군에서는 지난 5월 쌍둥이 출산 가정에 1억 원의 출산장려금을 지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자체별로 출산장려금을 지원하지만, 그 지원 규모는 각기 다르다. 문제는 요즘 젊은이들이 결혼하지 않는 데 있다. 정부가 34세 이하 무주택 청년을 위해 우대형 청약저축통장을 내년 출시한다. 역대 최초로 청약통장과 대출을 연계해 장기·저리의 대출을 지원할 뿐만 아니라, 결혼·출산·다자녀 등 전(全)생애주기에 걸쳐 추가 혜택을 부여하는 주거지원 방안이다. 과연 얼마나 실효를 거두고 출산을 장려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지금 같은 추세라면 2050년에는 청년인구가 전체 인구의 11%뿐으로 국민 10명 중 한 명만이 청년이라고 한다. 통계청이 20년간 청년인구 변화를 분석한 결과다.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 자체가 소멸 지역화하고 있다. 모든 정책을 동원해 청년들의 결혼을 장려하고 출산율을 높여야 한다. 청년들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는 결혼자금 부족인 바로 ‘돈’ 때문이다. 청년 자신들의 문제로 치부하기에는 나라의 미래가 위기다. 12월 정치 시즌에 돌입하게 되면 이런 문제에 대한 정치인들의 접근법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되돌아보는 주요 사안은 전쟁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이스라엘 전쟁의 참담한 상황을 지켜보면서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전쟁이 발생하면 무고한 민간인 피해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점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민간인들을 인질로 잡고 죽이고 하는 잔학성을 보면서 이런 비극은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깊이 깨닫게 된다. 6·25전쟁을 통해 뼈저린 경험을 한 우리들이기 더욱 그렇다. 아직도 그 고통의 연장선상에서 남북을 대립과 갈등이 멈추지 않고 있다. 휴화산이다. 언제 어떻게 터져 나올지 모른다. 핵까지 보유한 북한이라고 한다면 세계 다른 나라의 전쟁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불행한 사태가 될 수 있다. 한반도에서 전쟁은 절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우크라이전쟁은 힘이 없는 평화는 결코 무의미하다는 것을 교훈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유비무환의 자세는 늘 견지해야 한다. 달콤한 몽상에만 젖어 신선놀음만 하는 위정자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는 일에 한치도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올해 국제정세는 바로 이를 말해주고 있다. 한해를 되돌아보면서 새겨야 할 대목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은 누구에게나 늘 아쉬움이 크다. 못다 이룬 일들도 많고 후회스러운 일도 많다. 1993년 대전엑스포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나라가 2030 부산엑스포 유치전을 실패한 것도 실망스럽기 그지없지만 이제 아쉬움을 떨쳐야 한다. 저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12월만큼은 그동안의 모든 과정을 정리하고 정돈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다사다난했던 만큼 마음을 가다듬고 한해를 매듭지어야 한다. 연말이 되면 사회적 분위기도 다소 들뜨게 된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는 어려운 이웃, 소외계층이 존재하는 사회다. 복지 사각지대에서 눈물짓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늘 어떤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면 호떡집 불난 듯이 난리를 피우는 그런 복지가 아니라 평소 그늘진 곳들을 찾아 챙기는 마음이 필요하다. 세밑을 향하는 마음이 강퍅하지 않고 따뜻함이 넘쳐나길 바란다. 정치인들의 자화자찬식 현수막에는 오늘의 이모저모를 많이 담고 있다. 성토성 보다는 이웃을 향한 마음을 담는 온정의 현수막도 아쉽다. 분명한 것은 털어낼 것은 털어내고 잊을 건 잊어야 한다는 점이다. 올 한해의 다사다난했던 모든 일들이 반면교사나 타산지석이 되어 희망찬 새해를 위한 디딤돌이 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올 12월은 아름다운 사회적 분위기와 함께 알찬 한해 마무리로 모두가 유종의 미를 거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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