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태 전 MBC앵커
김헌태 전 MBC앵커

총선을 앞두고 후보자들의 막말 파문이 일파만파로 확산하고 있다. 급기야 공천을 취소하는 사태까지 빚고 있다. 공인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재삼 일깨우고 있다. 특히 후보자들의 과거 발언과 글도 쟁점으로 떠올랐다. 여야를 막론하고 막말의 주인공들은 천신만고 끝에 얻은 공천까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무심코 한 과거 말 한마디가 이렇게 큰 파문을 일으킬 줄을 몰랐을 것이다. 주워 담은 수 없는 과거 발언이 다시 소환되는 이유는 그만큼 공인의 언행이 경박해서는 안 된다는 뼈저린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당사자들은 뒤늦은 사과로 몸을 낮추고 막말 파문을 가라앉으려 하지만 한번 엎질러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다는 냉엄한 현실을 경험하고 있다. 막말 파문의 당사자들이 유형은 다르지만 한두 명이 아니라는데 그 심각성을 더하고 있고 경종을 울리고 있다. 막말 파문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망언이라는 비난도 쏟아지고 있다. 총선을 향한 치열한 경선을 거쳐 공천을 거머쥐고 안도했을지는 모르지만, 막말 파문 당사자들을 보는 각 정당의 입장은 단호한 것 같다. 이른바 꼬리를 자르지 않으면 총선에서 자칫 참패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동하는 듯싶다. 입이 화근이 된 총선 후보자들의 비참한 말로를 보게 되어 씁쓸하다. 각 정당도 악재 가운데 악재로 작용하자 재빠르게 공천을 줄줄이 취소하고 있다.

문제의 발언은 과거 발언이나 행적들이다. 백미는‘발목지뢰 목발 경품’ 발언으로 피해 장병 모욕 논란에 휩싸인 것이다. 막말이자 망언이라는 비난을 쏟아졌고 다친 장병들에게 했다는 거짓 사과 논란까지 불거졌다. 서울 강북을 정봉주 후보가 지난 2017년 7월 자신의 팟캐스트에서 “디엠지(비무장지대)에 멋진 거 있잖아요? 발목지뢰. 디엠지에 들어가서 경품을 내는 거야. 발목지뢰 밟는 사람들한테 목발 하나씩 주는 거야”라고 말한 사실이 최근 다시 회자한 것이다. 비무장지대 수색 작전 도중 북한군이 매설한 목함지뢰 폭발로 발목을 잃은 우리 군 장병들을 모욕한 ‘망언’이란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뒤늦게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한 민주당은 공천을 전격 취소했다. 설화로 개망신을 자초한 셈이다. 5·18 민주화운동에 북한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폄훼 논란을 빚은 국민의 힘 대구 중·남구 도태우 후보도 공천이 전격 취소됐다. 과거에도 후보자들의 막말 파문으로 선거 판세가 뒤바뀌는 악몽을 경험한 정당들이기 때문에 부랴부랴 공천을 취소하고 진화에 나선 것이다. 부산 수영구의 장예찬 후보도 과거 막말 발언이 조명되면서 결국 공천이 취소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지난 2014년 페이스북에 "매일 밤 난교를 즐기고, 예쁘장하게 생겼으면 남자든 여자든 가리지 않고 집적대는 사람이라도 맡은 직무에서 전문성과 책임성을 보이면 프로로서 존경받을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지 않을까"라고 쓴 것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됐다. 서울시민 비하 발언과 연예인 음란소설 집필 논란 등등 또 다른 발언도 잇따라 도마 위에 올랐다. 중도층 민심 이반 등 선거에 악영향을 우려해 공천이 전격 취소되는 사태를 빚었다. 국민 정서에 반하는 발언이라는 것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문제가 된 후보들의 공천을 전격 취소하며 사태를 진정시키려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공인의 길을 걷는 사람들의 언행이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과거 언행이 모두 소환되며 공든 탑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이런 가운데 출입 기자와의 점심 식사 자리에서 뜬금없이 과거 1988년 기자 회칼 테러 사건을 언급하며 협박성 발언을 한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언행의 파장이 커지고 있다. 사건당사자 가족들은 물론 야당과 심지어 여당에서조차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특정 언론을 겁박하고 5·18민주화운동의 배후설을 쏟아낸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당사자는 공직자로서 언행을 각별히 조심하고 더 책임 있게 처신하겠다고 사과했지만, 이 발언의 파장은 쉽게 사그라질 것 같지 않다. 한마디로 혀가 화를 자초한 셈이다. 과거에도 식사 자리에서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며 부메랑이 되어 개망신을 자초한 사회지도층의 사례가 있었다. 뒤늦게 머리를 숙여 사과했지만, 사태를 진정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발언의 맥락이나 경위를 떠나 이미 세간에 회자한 막말 파문은 자신을 불태우고 만다. 과거의 발언이나 글은 물론 작금에 벌어지는 공인들의 막말 모두가 패가망신의 원인이 되는 데서도 엿볼 수 있다. 그래서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며 사려 깊은 공인의 자세를 늘 견지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말 속담에도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라고 했다. 관련된 옛말들이 많다.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 “세 치 혀가 사람 잡는다.”,"말로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 "지혜롭게 말하라, 그렇지 않다면 침묵하라." 등등 말조심과 관련한 명언과 속담이 참으로 많다. 과거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요즘 정치지도자들도 선거철에 말을 함부로 하다가 뒤늦게 사과하며 난리를 피우는 장면을 너무나 자주 보게 된다. 과거 정치권의 노인 폄훼 논란은 지금도 틈만 나면 회자하고 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쉽게 당시 상황을 접할 수 있다. 과거 17대 총선 때도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지난해에도 ‘남은 수명비례 투표권 발언’ 후폭풍도 거셌다. 뒤늦게 이곳저곳을 찾아다니고 사과문을 발표해도 ‘때는 늦으리’다. 이번 총선 후보자의 언행의 문제가 아직도 세간에 회자하고 있다. 이 중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실패한 불량품’이라고 지난 2008년 칼럼을 통해 비하했다는 논란도 점화됐고, ‘이토 히로부미 발언’논란, 지난 2017년 일제 옹호 글의 페이스북 게재 문제 등 말과 글과 관련된 논란이 거세다. 사과하고 뒤늦게 후회를 한다고 해도 주워 담을 수 없다. 사려가 깊지 못지 못함을 자책해도 상처는 그대로 남아있다.

4·10총선이 본격적으로 막이 오르면 후보자들의 말의 향연이 뜨겁게 펼쳐질 것이다. 앞으로 어떠한 막말 파문이 새롭게 등장할지 모르지만, 모름지기 사려가 깊은 언행으로 유권자의 신뢰를 잃지 말아야 한다. 치열한 경선과 검증을 거쳐 공천받았다는 자부심과 함께 후보자들은 차제에 어리석은 언행을 멀리하며 누구보다도 모범적인 모습으로 총선에 임하고자 하는 각오를 새롭게 다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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